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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국가유산 방문코스1

천년 정신의 길

국가유산 방문코스1에서 만나는 9개의 국가유산 방문지

방문지
9

방문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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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경주 계림

    경상북도 경주시 교촌안길 27-20

    스탬프: 경주교촌마을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경주 계림은 김알지의 설화가 내려오는 숲이다. 고목이 울창하며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는 박, 석, 김의 세 성(姓) 씨가 번갈아 가며 왕위에 올랐는데, 김 씨의 시조가 김알지다.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경주 계림은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시작된 곳으로, 『삼국사기』가 전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밤중에 금성 서쪽에 있는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은 탈해왕은 날이 밝자 그곳으로 호공이라는 신하를 보냈다. 숲에 다다른 호공은 금빛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아래서 흰 닭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탈해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했는데, 그 안에는 사내아이가 있었다.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보냈다고 생각한 탈해왕은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이름은 알에서 나온 아기라는 뜻으로 ‘알지’라 했고, 성은 금빛 궤짝에서 나왔다 하여 김(金) 씨로 했다.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었던 이 숲은 원래 시림(始林)으로 불렸으나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계림(鷄林)이라 했다. 이는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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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경주 대릉원 일원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9

    스탬프: 대릉원 내 천마총 옆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경주 시내 곳곳에 솟아있는 23기의 신라 고분들은 대릉원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다. 서로 인접해 있기는 하나 워낙 넓은 부지에 조성된 탓에 황남대총, 천마총, 경주 미추왕릉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좋다. 신라 고분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황남대총은 신라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남·북으로 2개의 봉분이 표주박 형태로 붙어있는 이곳에선 다수의 유물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등이 있다. 발굴 당시 만 여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천마총은 고분들 가운데 유일하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유물 중 하늘로 비상하는 천마(天馬)를 그린 장니(障泥: 말 옆구리 양쪽에 늘어뜨리는 마구)가 있어 천마총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신라 회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크다. 경주 미추왕릉은 신라 제13대 왕이었던 미추왕의 능이다. 그는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7대손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을 대릉(大陵)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릉원’이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목걸이로, 남쪽 무덤에서 사람의 목에 걸린 채로 널(관) 안에서 발견되었다. 경주 지역 신라 무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목걸이 끝부분에 푸른 빛의 굽은 옥을 장식한 데 반하여 전체를 금으로 만들고 끝부분에도 굽은 옥 형태의 금으로 장식한 독특한 목걸이다.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의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금 허리띠(과대)와 띠드리개(요패)로, 28장의 판(板)으로 만들어진 이 허리띠는 주위의 작은 구멍들로 보아 가죽 같은 것에 꿰매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허리띠는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어 신라 시대의 착용법과 띠드리개의 배치 순서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발견된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천마) 그림이다. 천마도에 그려진 말의 모습, 테두리의 덩굴무늬를 보면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신라 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대릉원은 첨성대, 동궁과 월지와 함께 야간개장을 하는 경주의 대표적 국가유산으로 ‘대릉원 포토존’이라 불리는 목련나무가 있는 곳이 유명하다. 일출, 일몰 전후 사진 촬영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에 대릉원 포토존을 찾으면 이 포인트의 야경을 담으려는 많은 사진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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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경주 불국사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불국사

    스탬프: 불국사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토함산 중턱에 자리한 불국사는 경주의 자랑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유산이다. ‘불국(佛國)’은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으로, 신라인들이 그리던 이상적인 세계를 땅 위에 옮겨놓은 공간이 바로 이곳 불국사다.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1038년)에 따르면 불국사는 752년 창건되었다. 기술과 감각이 빚어낸 각각의 건축물에는 불교의 세계관이 녹아 있다. 불국사 경내는 석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래는 인간 세계이고 위는 부처님의 나라이다. 이 석단에는 대웅전을 향하는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제23호)가 있다. 인간세계와 부처님의 나라를 이어주는 청운교와 백운교는 밑 부분에 아치형 통로를 만들어놓아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인상을 준다. 옆쪽에 있는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국보 제22호)도 계단과 다리가 결합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극락이 연화와 칠보로 장식되어 있다는 불경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다리는 극락세계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만 오르내리던 곳이라 전해진다. 경내 중앙에는 경주 불국사 대웅전(보물 제1744호)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 각각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이 배치되어 있다. 불교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두 탑은 석가여래가 설법하고 다보여래가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장식성이 돋보이는 다보탑에선 수려한 개성이, 비례감이 돋보이는 석가탑에선 균형 잡힌 안정감이 묻어난다. 두 탑의 창의적인 조합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다.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로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며,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 창건 당시 기단과 석등 등의 석조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의 유구 위에 1765년(영조 41년)에 중창된 건물로 중창 기록과 단청에 대한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이자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안타깝게도 1925년 경 일제에 의해 완전히 해체, 보수되면서 탑 속의 유물들도 사라지고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돌사자들도 약탈되어 현재는 4마리 중 1마리만 남아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으로 석가탑이라고도 한다. 1966년 도굴꾼들에 의해 손상된 탑을 수리하면서 탑 속에서 여러 유물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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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경주 석굴암

    경북 경주시 석굴로 238 석굴암

    스탬프: 석굴암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경덕왕(재위 742~765년)때 창건됐다. 경주 불국사와 동시에 짓기 시작해 774년(혜공왕 10년)에 완성되었는데,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였다. 자연적으로 생긴 굴이나 바위를 뚫어서 만든 석굴과는 달리, 석굴암은 치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지어진 인공적인 석굴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가 입구인 전실과 원형의 주실을 연결하고 있다. 직사각형의 전실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데, 여기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이 조각되어 있다. 통로 입구에는 수문장인 금강역사가, 벽면에는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새겨져 있다. 통로 너머의 주실은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한다. 완벽한 균형미와 공간미를 자랑하는 돔형 천장 아래엔 불교 조각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본존불(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신비로운 위엄과 부드러운 생명력이 느껴지는 본존불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신라 장인들의 기교와 신앙심의 깊이를 보여준다.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이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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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경주 월성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스탬프: 첨성대 앞 해설사의 집 (* 해당 거점은 관리소 및 안내소의 부재로 부득이하게 도보 이동 가능한 첨성대 앞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에 스탬프를 비치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궁궐이 있었던 도성으로, 경주의 동궁과 월지와 더불어 야간명소 중 한곳이다. 『삼국사기』에 101년(파사왕 22년)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금성에서 월성으로 도성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신라가 멸망하는 935년까지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던 이곳은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 또는 ‘신월성’이라고도 불렸고, 왕이 계신 곳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했다. 절벽이 있는 남쪽을 제외한 동·서·북쪽은 흙과 돌을 쌓았고, 성벽 밑으로는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인공적으로 둘러 파서 물이 흐르도록 만든 것을 말한다. 원래는 여러 개의 문과 누각들, 관청 건물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없어졌고,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와 월성 서쪽에서 옮겨 온 경주 석빙고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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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도산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스탬프: 도산서원 관광해설사 안내소

    서른네 살 때 과거에 합격한 이후 4명의 임금을 섬겼던 퇴계 이황은 성리학을 체계화한 조선의 대학자였다. 그는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는데,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서당이 있던 자리에 도산서원을 지었다. 1576년에 완공된 서원에는 이황이 직접 설계한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비롯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 및 삼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 등이 있다. 보물 제2106호인 농운정사는 조선의 학문세계나 정치활동에서 큰 활동을 한 영남 선비들이 젊은 시절 퇴계의 가르침을 직접 받으며 공부하던 산실이며, 그 원형이 잘 남아있는 유적이다. 또한 서원 제일 뒤쪽에 위치한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며, 전교당은 유생들이 자기 수양을 하고 자제들을 교육하는 강당으로, 1574년(선조 7년)에 지은 것을 1969년에 보수한 것이다. 선조가 서원에 내려준 ‘도산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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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봉정사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스탬프: 봉정사 관광안내소 문화해설사의 집

    천등산에 자리한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봉정(鳳停), 즉 봉황이 머무른다는 뜻을 가진 이 사찰은 나무가 우거져 있고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하다는 느낌을 준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사찰의 입구에 해당하는 봉정사 만세루를 지나면 고풍스러운 전각들이 모여 있는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의 전각들은 각기 다른 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봉정사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은 목조건축의 계보를 훑어보는 것과 같다. 건축사적으로 의미 있는 전각으로는 극락전과 대웅전이 있다. 두 전각은 각각 마당을 갖춘 구조로 형성되어 각각 석가 신앙과 미타 신앙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안동 봉정사 극락보전은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양식을 본받았고, 안동 봉정사 대웅전은 고려 말·조선 초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과 불상을 모시는 부속 건물로 추정되는 안동 봉정사 고금당도 다양한 건축기법으로 주목받고 있다.안동 봉정사 극락전: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이 바뀌었다. 1972년 보수공사 때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의 지붕 수리 기록을 발견하였는데, 전통 목조 건물의 통상적인 수리 시기가 건립 후 100~150년이 걸리는 것으로 보아 1200년대 초 건립으로 추정되며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삼존상이 모셔져있는데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 『양법당중수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지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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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8

    국가유산 방문지

    안동 하회마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76-1

    스탬프: 하회마을 관광안내소

    세계유산이자 빼어난 자연 경관을 갖춘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씨족마을이다.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안고 흐르는 데서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600여 년 동안 류씨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이 마을엔 유교 전통과 민속 문화, 조선 시대 건축물이 남아있다. 특히 조선의 유학자 류운룡과 임진왜란의 공신 류성룡 형제가 자란 곳이기 때문에 이들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으로는 풍산 류씨의 대종가(大宗家)이자 류운룡의 집이었던 안동 하회 양진당, 류성룡의 종택인 안동 하회 충효당, 마을 북쪽 99칸 집으로 불린 안동 하회마을 화경당 고택 등이 있다. 600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방사선형으로 뻗어있는 골목을 누비는 것이야말로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낙동강 백사장도 빼놓지 말아야 할 장소다. 드넓은 백사장에서 바라보는 부용대의 절경은 자연을 감상하며 시를 읊었던 선비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만든다.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하회마을에는 두 개의 전통놀이도 전해진다. 양반들의 놀이인 하회선유줄불놀이와 서민들의 놀이인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매년 음력 7월 16일 밤이 되면 양반들은 보름달 아래서 시와 가무가 함께하는 뱃놀이를 했는데, 여기엔 불놀이가 곁들여졌다. 부용대 정상부터 하회마을 만송정 숲까지 줄을 걸고, 그 위에 수백 개의 숯가루 봉지를 매달아 공중 여기저기서 작은 불꽃들이 터지게 했다. 낙동강으로 떨어지는 불꽃의 장관을 즐기는 하회선유줄불놀이는 풍류의 전형이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춤으로 알려져 있다. 별신굿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에게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는 굿이다. 하회마을에서는 500년 전부터 10년에 한 번 보름날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별신굿을 해왔다. 이때 서낭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탈놀이도 했는데, 불교의 타락상,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 서민들의 애환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 겸암 류운룡(1539~1601)의 집으로 매우 오래된 풍산 류씨 종가이다. 입암 류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류중영은 류운룡의 아버지이다. 양진당은 류운룡의 6대손 류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안동 하회 충효당;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류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다. 선생이 쓴 『징비록』과 『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화경당 고택: 하회 북촌을 대표하는 규모가 큰 집으로 양반집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북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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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경주 첨성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39-1

    스탬프: 첨성대 앞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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