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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국가유산 방문코스2

근대유산의 길

국가유산 방문코스2에서 만나는 9개의 국가유산 방문지

방문지
9

방문 순서

  1. 1

    국가유산 방문지

    대구 근대문화골목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102길 66

    스탬프: 청라언덕 관광센터

    대구 중구의 골목투어 제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은 개항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쌓인 근대사의 자취를 도보로 정갈하게 연결하는 길이다. 출발점인 청라언덕은 1898년 미국 선교사 아담스와 존슨이 정착하여 근대 선교·교육·의료의 기틀을 마련한 곳으로, 푸른 담쟁이덩굴이 고풍스럽게 감싼 블레어·챔니스·스윗즈 주택 3채가 각각 교육·의료·선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언덕 아래로는 대구3·1만세운동의 숨은 통로였던 90계단과 대한민국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 노래비(碑), 초기 십자형 한옥 성당에서 출발하여 1902년 고딕 양식 석조·벽돌 건물로 재건된 대구 계산동성당이 이어진다. 또한,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며 1,300만 원의 국채를 갚고자 성금을 모았던 서상돈 선생의 고택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민족의 울분을 읊조린 이상화 시인의 고택, 근대문화체험관인 계산예가, 조선에 귀화한 중국인 두사충의 뽕나무 골목,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조선의 과거길 영남대로,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옛 대구의 번화가 종로, 화교소학교, 사투리로 ‘길다’를 ‘질다’로 표현된 진골목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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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

    국가유산 방문지

    인천 개항누리길

    인천 제물포구 신포로23번길 89

    스탬프: 인천개항박물관

    인천 개항누리길은 1883년 인천이 개항하면서 근대 문물과 국제 교류가 가장 먼저 밀려든 개항장 일대를 걷는 길이다. 인천 개항 후 대외무역이 활발해지자 지금의 인천광역시 일대에 일본과 청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됐고, 최초의 근대식 공원, 은행, 호텔 같은 건축물도 세워졌다. 개항누리길을 걷다 보면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부터 당시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까지 다양한 근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130년 전 인천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근대유물을 전시하는 인천개항박물관, 인천항의 물품 보관 창고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난 인천아트플랫폼, 중국인들이 모여 살던 차이나타운, 한국 제1호 중국 음식점 공화춘 건물을 활용한 짜장면박물관 등 인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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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3

    국가유산 방문지

    전남광주 양림 역사문화마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천변좌로446번길 7

    스탬프: 양림거점예술여행센터

    양림산과 사직산의 산 능선이 광주천으로 뻗어나간 모습에서 '버드름'이라 불렸던 양림동은, 1904년 유진 벨(배유지) 목사와 클레멘트 오웬 등 서양 선교사들이 정착하여 광주 근대화의 물결을 일으킨 거점이다. 광주읍성 밖 한적했던 양림산 일대에 교회와 학교, 병원이 들어서며 복음 전파와 신교육·신의료의 터전이 만들어졌으며, 수피아여학교와 오웬기념각, 우일선 선교사 사택, 22인의 선교사가 잠든 선교사 묘역, 400년 수령의 노거수 호랑가시나무가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도심 속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풍경 덕에 광주 5대 부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여 최승효·이장우 가옥 등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과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 골목마다 절묘한 공존을 이룬다. 시인 김현승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예술의 요람으로, 오늘날에는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과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과거와 현재를 활발히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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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

    국가유산 방문지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동태백로 404

    스탬프: 철암관광안내소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석탄산업의 심장부였던 철암은 한때 하루 수천 명이 오가며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와 가족들로 북적이던 탄광촌이다. 좁은 산비탈에 다닥다닥 들어선 까치발 건물과 옛 상점가, 골목의 간판까지 개발에서 비껴간 덕분에 전성기 탄광 마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철암탄광역사촌 곳곳의 전시 공간에서는 당시 광부와 주민들의 고단하면서도 활기찼던 삶을 사진과 생활용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바로 곁에는 1935년 지어져 지금도 가동 중인 국내 유일의 무연탄 선탄시설인 철암역두 선탄시설이 자리해, 석탄이 채굴되어 선별·운반되던 산업 현장의 흔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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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5

    국가유산 방문지

    논산 강경근대문화거리

    충남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40-2

    스탬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40-2 전화부스(백년가야밀면 맞은편)

    조선 후기 원산, 대구와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혔던 강경은 금강 수운을 통해 물자가 오가던 내륙 포구 상업도시였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강경의 풍물에 매료되어 이곳에 머물며 책을 집필했다고 전해질 만큼 예로부터 번성했던 고장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현 강경역사관)을 비롯한 근대 금융기관과 상업시설이 밀집하며 근대문화가 꽃피웠고, 옥녀봉 일대에는 지금도 옛 은행 건물과 상가주택 등 근대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발효 젓갈로 유명한 강경젓갈시장과 함께 둘러보면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상업도시 강경의 켜켜이 쌓인 시간을 함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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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6

    국가유산 방문지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

    충남 서천군 판교면 종판로 882-8

    스탬프: 시간이 멈춘 마을 마을안내소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930년 일제강점기 장항선 판교역 철도개통과 함께 번성하다, 2008년 철도역 이전으로 본격적인 쇠퇴의 과정을 거친 근‧현대기 농촌지역 역사 흐름의 흔적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현암리에 있는 7개의 근대 건축물을 말한다. 서천 판교 구 동일정미소, 서천 판교 구 동일주조장, 서천 판교 근대상가주택 1, 서천 판교 구 삼화정미소, 서천 판교 근대상가주택 2, 서천 판교 구 중대본부, 서천 판교 구 판교극장을 가리킨다. 판교역이 개통되며 형성된 판교마을(현암리)은 인근 판교리의 면사무소와 장터, 우체국, 경찰서까지 옮겨올 정도로 크게 번성해 한때 충남 3대 우시장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그러나 2008년 장항선 직선화로 판교역이 이설되면서 개발에서 비껴가게 되었고, 그 덕분에 193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세워진 극장, 동일주조장, 일본식 가옥의 장미사진관 등 옛 건물과 빛바랜 간판이 그대로 남아 '시간이 멈춘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옛 건물의 오래된 폰트와 간판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근대 상업 마을의 정취를 천천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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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7

    국가유산 방문지

    군산 역사문화공간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망로 240

    스탬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군산 내항 일대는 1899년 대한제국의 개항 이후 구 군산세관 본관을 중심으로 각국 거류지가 설정되며 형성된 근대 항만도시로, 일제강점기에는 호남평야에서 거둔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대표적인 경제 수탈항이었다. 지금도 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에 따라 오르내리던 뜬다리부두(부잔교)와 호안시설, 철도 등 옛 항만 시설이 남아 있으며, 붉은 벽돌의 구 군산세관 본관과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현 근대미술관),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등 근대 금융·관세 건물들이 장미동 일대에 모여 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신흥동에는 일제강점기 지역 유지들이 모여 살던 부촌에 지어진 신흥동 일본식 가옥(옛 히로쓰가옥)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어 '장군의 아들' 등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 진포해양테마공원까지 도보로 둘러보며 개항과 수탈, 산업화로 이어진 근대 항만도시 군산의 역사를 폭넓게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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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8

    국가유산 방문지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인북로12길 5

    스탬프: 솜리 문화금고

    ‘솜리’는 과거 전라북도 이리(裡里)의 옛 이름으로 약 10여 호 정도가 거주하는 한적한 마을이었으나,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군산과 전주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작은 시장과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동이리역(東裡里驛)이 생기면서 솜리시장(현재의 남부시장 주변) 일대가 번화하였고 1919년에는 솜리시장에서 4.4.만세운동이 있었다. 광복 이후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주단거리와 바느질거리가 남아 있는 근대 생활사의 현장으로, 골목골목마다 오래된 건물과 간판이 저마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러한 보존·활용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스탬프 거점인 솜리문화금고는 1925년 이리금융조합 건물로 지어져 광복 후에는 등기소와 전북은행 취급소로 사용되며 지역 금융의 역사를 함께해 왔다. 현재는 솜리근대역사문화공간을 대표하는 방문자센터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근대 금융시설이 지역민의 삶과 맺어온 오랜 인연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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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9

    국가유산 방문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영산로29번길 6

    스탬프: 목포근대역사관 1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식민지 수탈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부두 노동운동·소작쟁의·의병·항일운동 등 민족의 저항 역사가 함께 숨 쉬는 곳이다. 1897년 목포가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국 거류지 지역으로, 조선시대 군사 시설인 목포진(木浦鎭)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해안가를 간척하여 근대 시가지를 형성하였다. 지금도 당시의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공간이다. 개항 당시 목포 각국 거류지의 총면적은 726,024㎡(약 22만 평)인데, 이 중 핵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등록문화재 718호로 등록하였다. 이 공간은 과거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 일대에서 목포역 방향으로 이어진 대표 도로를 중심에 놓고, 유달산·목포진·선창을 연결하는 구조이다. 이 일대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한 구 일본 영사관(현 목포근대역사관 1관)을 비롯하여, 경제 수탈의 상징인 구 동양척식회사 건물(현 목포근대역사관 2관), 일본인들이 다녔던 학교와 교회, 일본식 민가,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 등이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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