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코스
충남국가유산 방문코스1

백제 고도의 길

국가유산 방문코스1에서 만나는 9개의 국가유산 방문지

방문지
9

방문 순서

  1. 1

    국가유산 방문지

    공주 공산성

    충남 공주시 웅진로 280 공산성

    스탬프: 공산성 매표소

    금강변에 있는 야산과 계곡을 둘러쌓은 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이다. 원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돌을 쌓아 석성으로 고쳤다. 만들어진 당시에는 웅진성으로 불렸지만 고려 시대 이후로 공주산성 또는 공산성으로 불렸다. 538년(성왕 16년)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백제의 왕성이었던 공주 공산성은 조선시대까지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 실제로 성 안에선 백제의 기와와 토기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의 유물들도 많이 출토되었다. 또한 이곳은 역사의 주요 장면들이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머물렀고,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가 되기도 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엔 김헌창의 난(822년)이 일어났었다. 조선 시대에 이괄의 난(1623년)이 일어나자, 인조가 잠시 피난을 온 적도 있었다. 능선을 따라 거침없이 뻗어 있는 공주 공산성에는 백제의 기상이 스며있는 듯하다. 이 당당한 성곽의 정문 역할을 하는 곳은 금서루인데, 이곳으로 들어가 성곽을 한 바퀴 돌면 성 안은 물론 공주 시내 전경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서문에서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공주 송산리 고분군), 백제의 제사유적인 정지산 유적, 금강변에 있는 고마나루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공산성 앞에서 금강신관공원까지 부교로 건널 수 있다. 금서루에서는 백제왕국의 위풍당당함을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으로 볼 수 있고, 금강신관공원에서는 밤풍경이 아름다운 공산성 감상이 가능하다.

    공식 정보 보기 ↗
  2. 2

    국가유산 방문지

    공주 마곡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스탬프: 마곡사 5층 석탑 앞 (템플스테이 사무소 앞)

    '춘(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 마곡사 소개글 中 태화산에 위치한 마곡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태화산마곡사 사적입안』(1851년)에는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 후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세운 7대 가람 중 세 번째 사찰로 창건 이후 다섯 번의 중수(重修)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교양종대본산마곡사 연기략초』 에서는 “보조선사 체징이 마곡사를 창건하고 그 후 범일국사, 도선국사가 확장과 중수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년 봄마다 신록축제가 열릴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쪽은 수행 공간인 남원이고 다른 한쪽은 예불 공간인 북원이다. 남원의 대표적인 전각이자 수행 공간의 중심인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축산의 준말로, 이 산을 사찰 내에 옮겨놓은 공간이 바로 영산전이다. 북원의 대표적인 전각인 공주 마곡사 대웅전은 내부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이며,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년)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탑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라마탑과 비슷한 이 유적은 고려 후기 원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들어온 라마교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또한 마곡사는 화승(畵僧) 계보로도 유명해 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화승을 대대로 배출하였으며, 오늘날까지 화승들을 추모하는 불모다례제를 행하고 있다.

    공식 정보 보기 ↗
  3. 3

    국가유산 방문지

    논산 돈암서원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돈암서원

    스탬프: 돈암서원 내 관광안내소

    예학의 대가 김장생(1548~1631)의 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엄격한 질서와 형식을 중시하는 예학은 예(禮)의 본질 및 내용의 옳고 그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어받은 김장생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쓴 인물로, 이 서원은 그가 타계한지 3년 후인 1634년(인조 12년)에 만들어졌다. 교육 시설을 중심으로 배향 공간과 부속 건물로 이루어진 돈암서원에는 서원 건축물 가운데 보기 드물게 규모가 큰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이 있다. 유생들을 가르치던 강당인 응도당은 구조와 세부 기법이 특이한 건물로 평가받는다. 위패를 모신 숭례사의 꽃담도 서원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고정산을 등지고 너른 평지에 자리한 건물들은 담담한 멋을 풍기지만, 서원 안의 배롱나무꽃이 만개하는 여름에는 화사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1871년(고종 8년)에 흥선대원군이 전국 650여 개의 서원 문을 닫으라는 훼철령을 내려 47개의 서원만이 남았을 때에도 명맥을 유지하였다.

    공식 정보 보기 ↗
  4. 4

    국가유산 방문지

    부여나성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스탬프: 부여왕릉원 매표소 앞

    평양에 있는 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 하나이다.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긴 538년경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금강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벽 역할을 했기 때문에 부소산성에서부터 도시의 북쪽과 동쪽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수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성곽은 지형에 따라 축성 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흙을 다져 쌓아올린 형태로 지어졌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봉수 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고, 성안에 왕궁, 관청, 민가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식 정보 보기 ↗
  5. 5

    국가유산 방문지

    부여 부소산성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부소산성

    스탬프: 부소산성 정문매표소, 구문매표소

    부소산을 둘러쌓은 사비시대의 도성이다. 『삼국사기』에는 ‘사비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이곳은 538년(성왕 16년)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뒤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이자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군창 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했고, 평상시에는 왕과 귀족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던 장소로 사용된 듯하다.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백화정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선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의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정자 바로 아래, 즉,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에 있는 바위가 낙화암이다. 백제 의자왕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궁녀들은 이곳으로 몰려와 치마를 뒤집어쓰고 물로 뛰어내렸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훗날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으로 고쳐 불렀다. 낙화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고란사가 있다. 사찰 뒤쪽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라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는데, 바위 사이로 흐르는 약수가 특히 유명하다. 고란약수로 불리는 이 물은 한번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식 정보 보기 ↗
  6. 6

    국가유산 방문지

    익산 미륵사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스탬프: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미륵사지 관광안내소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미륵사는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 때 창건된 사찰이다.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 위해 지은 것으로, 백제의 사찰 중에선 규모가 가장 크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왕과 왕비가 사자사를 가던 중 용화산(지금의 미륵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는데, 왕비가 사찰을 짓고 싶다고 하자 왕이 연못을 메운 뒤 그곳에 미륵사를 지었다고 한다. 백제의 사찰은 하나의 탑과 하나의 금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륵사는 3개의 탑과 3개의 금당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백제인의 미륵신앙, 즉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이곳에는 석탑 두 개와 목탑 한 개가 있었는데, 서쪽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20년에 걸친 수리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639년(무왕 39년)에 만들어진 이 탑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석탑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반쯤 부서진 상태로 6층 일부만 남아 있었다. 해체·보수작업은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를 통해 건립연대가 밝혀졌다. 크고 작은 석재들을 조립하여 복원한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임과 동시에 고대 건축의 실제 사례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우리나라 불탑 건축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공식 정보 보기 ↗
  7. 7

    국가유산 방문지

    익산 왕궁리유적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왕궁리유적전시관

    스탬프: 백제왕궁박물관 1층 전시관 입구 안내 데스크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큰 백제의 유적으로 꼽히는 곳이다. 백제 무왕 때 왕궁이 지어졌다가 후대에 주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을 지었다는 사실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발굴 과정을 통해 궁성과 관련된 건물터와 정원시설, 화장실 터와 외부 담장 등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왕궁리 유적이 왕도였거나 최소한 왕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백제 왕궁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익산 천도설 또는 별도(別都)설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큰 곳이다. 흔적만 남은 거대한 왕궁터에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과 왕궁리 유적전시관이 있으며, 모형, 현황도, 영상,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은 백제 왕궁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공식 정보 보기 ↗
  8. 8

    국가유산 방문지

    부여 왕릉원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스탬프: 부여왕릉원 매표소 앞

    부여 능산리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 무덤들이다. 무덤은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 전부터 왕릉으로 알려져 왔던 곳으로 일제시대에 1~6호 무덤까지 조사되어 내부구조가 자세히 밝혀졌고, 7호 무덤은 1971년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내부구조와 재료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호 무덤(동하총)은 네모형의 널방과 널길로 이루어진 단실무덤으로 널길은 비교적 길고 밖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팔형이다. 널방의 네 벽과 천장에는 각각 사신도와 연꽃무늬, 그리고 구름무늬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2호 무덤(중하총)은 무령왕릉과 같이 천장이 터널식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3호 무덤(서하총)·4호 무덤(서상총)은 천장을 반쯤 뉘어 비스듬히 만든 후 판석을 덮은 평사천장이고 짧은 널길을 가졌다. 이 형식은 부여지방에 많으며 최후까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능산리 무덤들은 일찍이 도굴되어 두개골 파편·도칠목관편·금동투조식금구·금동화형좌금구 등 약간의 유물만 수습되었다. 무덤들 서쪽에서는 절터가 발굴되어 백제금동대향로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능산리 무덤들이 왕실 무덤지역라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공식 정보 보기 ↗
  9. 9

    국가유산 방문지

    부여 정림사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정림사지

    스탬프: 정림사지 박물관 안내데스크 , 정림사지 문화해설사의집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에서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는 글이 발견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시대에 백제사찰의 강당위에 다시 건물을 짓고 대장전이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림사의 주요 건물 배치는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에 이르는 중심축선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건물을 복도로 감싸고 있는 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있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중문 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93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석탑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장식기와를 비롯하여 백제 벼루, 토기와 흙으로 빚은 불상들이 있다.

    공식 정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