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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국가유산 방문코스1

산사의 길

국가유산 방문코스1에서 만나는 9개의 국가유산 방문지

방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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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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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공주 마곡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스탬프: 마곡사 5층 석탑 앞 (템플스테이 사무소 앞)

    '춘(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 마곡사 소개글 中 태화산에 위치한 마곡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태화산마곡사 사적입안』(1851년)에는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 후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세운 7대 가람 중 세 번째 사찰로 창건 이후 다섯 번의 중수(重修)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교양종대본산마곡사 연기략초』 에서는 “보조선사 체징이 마곡사를 창건하고 그 후 범일국사, 도선국사가 확장과 중수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년 봄마다 신록축제가 열릴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쪽은 수행 공간인 남원이고 다른 한쪽은 예불 공간인 북원이다. 남원의 대표적인 전각이자 수행 공간의 중심인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축산의 준말로, 이 산을 사찰 내에 옮겨놓은 공간이 바로 영산전이다. 북원의 대표적인 전각인 공주 마곡사 대웅전은 내부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이며,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년)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탑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라마탑과 비슷한 이 유적은 고려 후기 원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들어온 라마교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또한 마곡사는 화승(畵僧) 계보로도 유명해 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화승을 대대로 배출하였으며, 오늘날까지 화승들을 추모하는 불모다례제를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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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보은 법주사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법주사

    스탬프: 법주사 문화해설사의 집

    속리산에 위치한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년) 신라의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미륵 신앙의 요람인 법주사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돌로 만든 연못인 보은 법주사 석련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탑인 보은 법주사 팔상전 등 많은 보물들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은 부여 무량사 극락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3대 불전(佛殿)으로 꼽힌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통일신라 시기 주된 형태이던 8각 기둥 대신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는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과 함께 통일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보은 법주사 석련지 -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불교에서의 연꽃은 극락세계를 뜻하여 사찰 곳곳에서 이를 본뜬 여러 형상들을 만날 수 있다. 입구 윗난간에 세워진 기둥은 불국사 다보탑에 새겨진 돌난간의 기둥과도 비슷하여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보은 법주사 팔상전 -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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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방문지

    순천 선암사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선암사

    스탬프: 선암사 관광안내소, 선암사 종무소(08:00 – 17:00)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선암사는 고려 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重創)된 이후 수차례 중창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다. 빼어난 풍경과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경내에는 커다란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승선교, 화려하고 장식적인 대웅전, 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동·서 삼층석탑,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33조사도인 순천 선암사 33조사도 등이 있다. 선암사 승선교 -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이다.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 이 다리를 놓은 것으로, 1698년(숙종 24년) 관음보살을 보기 위해 기도했지만 보지 못한 호암대사가 벼랑에 몸을 던지려던 순간 대사를 구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우고, 절 입구에 무지개다리를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선암사 대웅전 - 선암사 대웅전은 1597년 조선 시대 정유재란으로 불에 타 없어져 1660년(현종 1년)에 새로 지었다. 그 후 1766년(영조 42년) 다시 불탄 것을 1824년(순조 24년)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으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성에서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 - 선암사 안의 승선교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 좌우로 3층 석탑 2기가 서 있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이 두 탑은 위와 아래의 비율도 건실하고 우아하며 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선암사 33조사도 - 이 작품은 『 조당집(祖堂集)』(중국의 정과 균이 중국과 한국 선종의 역사와 선사들의 전기를 기록하여 952년에 간행한 불교서)에 근거하여 가섭존자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 스님까지 33명의 조사를 11폭으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선종 33조사도이다. 원래 총 11폭으로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7폭만이 남았는데, 1753년에 은기(隱奇)를 비롯한 5명의 승려화원이 그린 것으로 18세기 중반 불화 속에 수묵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던 의겸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33선종조사도라는 희귀성과 함께 도상의 구성 방식과 필치(筆致) 등에서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선암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매화가 있다.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된 원통전 뒷편의 백매(수령 620년)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수령 550년)도 있다. 고려 시대 대각국사가 선암사를 중창할 때 삼성각 앞 와송과 함께 처음 심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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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송광사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스탬프: 송광사 관광안내소

    16명의 국사를 배출하여 승보(僧寶) 사찰이라 불리는 송광사는 신라 말에 창건됐으나 고려 시대에 보조국사 지눌이 불교계 정화를 위해 일으킨 결사운동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중창(重創)됐다. 16명의 국사 진영을 모신 송광사 국사전, 『화엄경』의 설법 내용을 담은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정교하게 조각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등 다수의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보 사찰로 꼽힌다. 송광사 국사전 -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송광사 하사당(보물)과 같은 시대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며,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 『화엄경』의 7처9회(七處九會)의 설법 내용을 그린 변상도로, 설법 내용을 매우 충실하게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있다. 계획적이고 짜임새 있는 구도와 더불어 황토색 바탕에 홍색과 녹색, 금색을 사용하고, 각 회주인 보살형 노사나불의 영락에 고분법을 활용하여 장식함으로써 화면이 밝고 화려해지는 18세기 불화의 경향을 살필 수 있다.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 하는데,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조삼존불감은 매우 작으면서도 세부 묘사가 정확하고 정교하여 우수한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어, 국내에 남아있는 불감류 가운데 매우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송광사에는 나이가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곱향나무 쌍향수가 있다. 높이는 약 12m이며,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인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문화적·생물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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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봉정사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스탬프: 봉정사 안내소

    봉정사는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왔다고 하여 그 이름을 지었으며 천등산(天燈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절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극락전이 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천등산에 자리한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봉정(鳳停), 즉 봉황이 머무른다는 뜻을 가진 이 사찰은 나무가 우거져 있고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하다는 느낌을 준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안동 봉정사 극락보전이 있으며, 대웅전과 극락전이 각각 마당을 갖춘 구조로 형성되어 각각 석가 신앙과 미타 신앙을 구현하고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이 바뀌었다. 1972년 보수공사 때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에 지붕 수리 기록을 발견하였는데, 전통 목조건물의 통상적인 수리 시기가 건립 후 100-150년이 걸리는 것으로 보아 1200년대 초 건립으로 추정되며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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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통도사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

    스탬프: 양산시 종합관광안내소(통도사 제 1주차장 내 위치)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보(佛寶) 사찰로 통도사 대웅전에서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의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사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별자리를 진주로 표현한 통도사 금동천문도, 인상적인 벽화가 그려진 통도사 영산전 등 아름다운 보물들이 보전되고 있다.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인 대웅전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담고 있는 금강계단은 각각 건축 구조와 건축사 연구, 계단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해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통도사 금동천문도 - 전면에는 천구(天球)의 북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북극으로부터 적도 부근에 이르는 영역의 별자리들이 표시되어 있다. 천문도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고 28수 등 각 별자리를 손으로 더듬어 알 수 있어 하늘을 보면서 별자리를 찾아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 별을 관측할 수 있도록 진주 보석에 희미한 빛을 비추어 별자리를 찾거나 익히는데 편리했을 이 천문 도판은 휴대하여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제작된 과학 유물로 볼 수 있다. 통도사 영산전 - 통도사 하로전(下爐殿)의 중심 건물로 그 전면의 좌우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놓여 있다. 건축물 용도에 따른 불단 배치 및 벽화를 구성하기 위한 벽면 구성, 반자의 구성 등에서 특징적이며, 상부 가구와 공포 형식 또한 18세기 초 불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불교 건축사와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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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부석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부석사

    스탬프: 부석사 관광안내소

    부석사는 676년에 신라의 의상대사에 의해 미타 신앙의 성지인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창건되었다.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세운 이른바 ‘화엄 10찰’ 가운데 한 곳으로 예로부터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사로 여겨졌으며, 창건 이래 의상대사의 법을 전하는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이곳엔 안동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 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송고승전』에 있는 설화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 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시고 있는 소조불상이다. 소조불상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드는데, 이 불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불상의 뒤편에 나무로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원형으로 표현하고 그 안을 화려한 꽃무늬를 장식하였으며, 작은 부처를 달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고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한다.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지며,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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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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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해인사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스탬프: 해인사 종합안내소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가야산 서남쪽에 자리한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대사와 이정대사가 802년(애장왕 3년)에 창건하였다. 조선 초 해인사로 팔만대장경판을 이운하여 모시게 되면서,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봉안한 법보(法寶) 사찰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고 내용이 완벽한 해인사 대장경판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인 해인사 장경판전 등 귀중한 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해인사 대장경판 -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 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고려 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 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 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해인사 장경판전 -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팔만 여 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1995면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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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대흥사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대흥사

    스탬프: 대흥사 문화해설사의 집, 종무소(도장만)

    두륜산의 절경을 품은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친 서산대사의 의발(衣鉢: 의복과 공양 그릇)이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호국도량이다.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들을 배향한 표충사(表忠祠)는 정조가 사액을 전하였으며, 서산대사의 구국정신을 기려 국가에서 건립한 호국도량의 표상이다. 이렇듯 사찰 경내에 유교식 사당이 건립된 것은 매운 드문 경우이다. 또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하여 『동다송(東茶頌)』을 통해 차의 품격을 높인 초의선사가 머물던 일지암이 있으며,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그리고 다산 정약용과의 교류는 승과 속·유교와 불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눈 일화로도 유명하다. 대흥사 서산대사탑,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대흥사 북미르암마애여래좌상 등 유구한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대흥사 서산대사탑 - 대흥사 입구에 자리한 부도전 내에 건립되어 있다. 이 탑은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갖춘 석조탑으로, 각 부분에 표현된 다양한 조식은 다른 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일면을 지니고 있는 등 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 서산대사의 유물은, 임진왜란때 승군(僧軍)으로 나선 서산대사를 승군 대장 도총섭(都總攝)으로 임명한 교지와 정조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을 친히 적은 서산대사화상당명(西山大師畵像堂銘) 등 총 2점이 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특명을 받아 팔도도총섭이 되어 73세의 노령으로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군 1,500명을 모아 활약했던 서산대사의 영정이 1794년 해남 대흥사에 모셔지자 정조는 친히 지은 '서산대사화상당명(西山大師畵像堂銘)'과 그 서문을 써서 대흥사에 내려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꽃, 구름무늬 채화가 그려진 담황색 비단에 내용이 적혀있고, 끝부분에 정조의 친필임을 상징하는 '홍재(弘齋)'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글의 내용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 바위 면에 고부조(高浮彫)되어있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공양천인상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좌상으로 규모가 크고, 조각 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그 예가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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