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코스
경북국가유산 방문코스1

서원의 길

국가유산 방문코스1에서 만나는 9개의 국가유산 방문지

방문지
9

방문 순서

  1. 1

    국가유산 방문지

    경주 옥산서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옥산서원

    스탬프: 옥산서원 관광안내소

    유학자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으로 1572년에 창건됐다.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언적은 조선의 성리학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옥산서원은 공부하는 장소인 구인당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체인묘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유학생들이 휴식을 취하던 무변루는 서원 건축에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가 도입된 최초의 사례다. 외부의 경관과 내부의 경관을 연결하는 누마루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효과를 극대화한다.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삼국사기』 와 조선의 경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이언적 수고본 일괄-속대학혹문』 등이 있다.

    공식 정보 보기 ↗
  2. 2

    국가유산 방문지

    논산 돈암서원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돈암서원

    스탬프: 돈암서원 내 관광안내소

    예학의 대가 김장생(1548~1631)의 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어받은 김장생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쓴 인물로, 이 서원은 그가 타계한지 3년 후인 1634년(인조 12년)에 만들어졌다. 교육 시설을 중심으로 배향 공간과 부속 건물로 이루어진 돈암서원에는 서원 건축물 가운데 보기 드물게 규모가 큰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이 있다. 유생들을 가르치던 강당인 응도당은 구조와 세부 기법이 특이한 건물로 평가받는다. 위패를 모신 숭례사의 꽃담도 서원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고정산을 등지고 너른 평지에 자리한 건물들은 담담한 멋을 풍기지만, 서원 안의 배롱나무꽃이 만개하는 여름에는 화사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이 전국 650여 개의 서원 문을 닫으라는 훼철령을 내려 47개의 서원만이 남았을 때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국가유산청 포털 참고)

    공식 정보 보기 ↗
  3. 3

    국가유산 방문지

    달성 도동서원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로 1 도동서원

    스탬프: 도동서원 관광안내소

    성리학의 기본인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칭한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1605년에 창건됐다. ‘도동(道東)’은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건물들이 중심축을 따라 반듯하게 배열된 이 곳은 공간 구성도 뛰어나지만, 특히 중정당·사당·담장이 서원 건축의 미학을 보여준다.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한 중정당은 강당 건물로, ‘중정(中正)’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곧고 올바른 상태를 의미한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흙과 돌과 기와를 이용해 쌓았는데, 높낮이가 다른 지붕선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고고하고 반듯하다. 간결하고 검소하게 지은 전통 깊은 조선 중기 서원 건축물로 옥산서원,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과 함께 5대 서원으로 꼽힌다.

    공식 정보 보기 ↗
  4. 4

    국가유산 방문지

    안동 도산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도산서원

    스탬프: 도산서원 관광해설사 안내소

    서른네 살 때 과거에 합격한 이후 4명의 임금을 섬겼던 퇴계 이황은 성리학을 체계화한 조선의 대학자였다. 그는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는데,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서당이 있던 자리에 도산서원을 지었다. 1576년에 완공된 서원에는 이황이 직접 설계한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비롯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 및 삼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 등이 있다. 보물 제2106호인 농운정사는 조선의 학문세계나 정치활동에서 큰 활동을 한 영남 선비들이 젊은 시절 퇴계의 가르침을 직접 받으며 공부하던 산실이며, 그 원형이 잘 남아있는 유적이다. 또한 서원 제일 뒤쪽에 위치한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며, 전교당은 유생들이 자기 수양을 하고 자제들을 교육하는 강당으로, 1574년(선조 7년)에 지은 것을 1969년에 보수한 것이다. 선조가 서원에 내려준 ‘도산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공식 정보 보기 ↗
  5. 5

    국가유산 방문지

    안동 병산서원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병산서원 관광안내소

    스탬프: 병산서원 관광안내소

    류성룡과 그의 아들 류진을 배향한 곳으로, 고려 시대 사림의 교육 기관이었던 풍악서당에서 기인했다. 병산은 빼어난 자연경관이 병풍을 둘러친 듯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만대루 기둥 사이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된다. 크고 우직한 만대루의 기둥은 다듬지 않은 목재를 사용했고, 자연석을 이용한 주춧돌 역시 거칠고 투박하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 두보가 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은 해질녘에 마주 대할만 하고(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름처럼 해질 무렵 이 ‘만대루’에 올라 강 건너 짙은 파노라마 ‘병산’을 마주 바라보면, 산 아래 강물에 내리는 노을이 화려하다. 인공의 냄새가 나지 않는 병산서원은 낙동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환경과 어우러져 자연 친화적 공간을 연출한다. 건축물이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져야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공간’으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또한 병산서원은 한국서원의 기능이 ‘교육’에서 ‘공론의 장’으로 넓혀진 대표적 사례이다. 최초로 수천 명이 뜻을 모아 상소를 올린 서원이기도 하다.

    공식 정보 보기 ↗
  6. 6

    국가유산 방문지

    영주 소수서원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소수서원 관광안내소

    스탬프: 소수서원 관광안내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며,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년)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고, 정부로부터 사액을 받아 이후 소수서원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학문을 강론하던 강학당과 경내에 있는 사당인 문성공묘가 있다. 소수박물관에는 안향 초상이 있으며, 서원이 건립되기 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어서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도 남아 있다. 강학당은 서원의 양대 기능 중 하나인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장대석의 높은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자연석을 다듬은 초석을 놓았다. 강학당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있다. 문성공묘는 소수서원의 경내에 있는 제향 기능의 사당으로 고려 중기 문신인 회헌 안향이 주향(主享)이다. 매년 3월,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주세붕이 직접 쓴 제향 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홀기문서(笏記文書)가 전하고 있다. 안향은 1260년(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보급한 인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라고 할 수 있다.

    공식 정보 보기 ↗
  7. 7

    국가유산 방문지

    장성 필암서원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로 187 필암서원

    스탬프: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내

    조선 제12대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김인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1590년에 세운 서원이다. 이곳에 보관된 필암서원 문적 일괄은 유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서원의 역대 원장들, 수업을 담당한 교관, 강의에 참여한 인물 명단, 서원 소속 유학생 명단 등이 포함되어 있어 필암서원의 운영과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김인후와 관련된 문서들을 새긴 목판 장성 필암서원 하서유묵목판일괄도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서원 강당은 남쪽에 있는 입구를 향해 지어지지만,필암서원의 강당은 북쪽에 있는 사당을 바라보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송시열이 쓴 현판이 걸려있는 확연루는 서원의 정문이자 휴식공간으로, 탁 트인 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공식 정보 보기 ↗
  8. 8

    국가유산 방문지

    정읍 무성서원

    전북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 무성서원

    스탬프: 무성서원 관리사무소 앞 대청마루

    통일신라 후기의 학자 최치원의 사당과 시·서·화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린 조선의 문신 신잠의 사당을 병합하여 만든 서원이다. 원래는 태산서원이었으나, 숙종 22년(1696)에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무성서원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앞쪽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원리를 따르고 있지만, 명륜당과 사당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담 바깥쪽에 위치해 있어 분리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산속에 위치한 다른 서원들과는 달리 마을 한가운데 있는 무성서원은 1906년 호남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최익현과 임병찬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 거점이 바로 무성서원이었다. 서원 옆에 있는 병오창의기적비는 당시의 항일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공식 정보 보기 ↗
  9. 9

    국가유산 방문지

    함양 남계서원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

    스탬프: 남계서원 관광안내소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다. ‘남계’라는 이름은 서원 주변을 흐르는 남계천에서 비롯되었다. 1552년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는데, 정여창은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추앙받는다. 동방오현이란 우리나라의 뛰어난 다섯 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의 위패는 모두 성균관 문묘에 봉안되어 있다. 남계서원은 전학후묘 배치 원리가 시작된 곳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당에서는 산줄기와 물줄기로 둘러싸인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강학 공간의 중심인 명성당 앞쪽 좌우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각각의 건물에는 누마루와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서원 안에 연못이 두 개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서원 어귀에 있는 ‘하마비’와 ‘홍살문’을 지나 정문 ‘풍영루’에 오르면, 편액에 ‘사방으로 트인 전망, 넓은 들판, 감돌아 얽히듯 냇물이 흐른다. 먼 숲은 푸르고 저녁노을은 아름답다’라고 적혀있을 정도로 뺴어나 경치를 자랑한다.

    공식 정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