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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방문코스1산사의 길

해남 대흥사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대흥사

방문지 상세 정보

스탬프 위치대흥사 문화해설사의 집, 종무소(도장만)

두륜산의 절경을 품은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친 서산대사의 의발(衣鉢: 의복과 공양 그릇)이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호국도량이다.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들을 배향한 표충사(表忠祠)는 정조가 사액을 전하였으며, 서산대사의 구국정신을 기려 국가에서 건립한 호국도량의 표상이다. 이렇듯 사찰 경내에 유교식 사당이 건립된 것은 매운 드문 경우이다. 또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하여 『동다송(東茶頌)』을 통해 차의 품격을 높인 초의선사가 머물던 일지암이 있으며,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그리고 다산 정약용과의 교류는 승과 속·유교와 불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눈 일화로도 유명하다. 대흥사 서산대사탑,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대흥사 북미르암마애여래좌상 등 유구한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대흥사 서산대사탑 - 대흥사 입구에 자리한 부도전 내에 건립되어 있다. 이 탑은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갖춘 석조탑으로, 각 부분에 표현된 다양한 조식은 다른 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일면을 지니고 있는 등 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 서산대사의 유물은, 임진왜란때 승군(僧軍)으로 나선 서산대사를 승군 대장 도총섭(都總攝)으로 임명한 교지와 정조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을 친히 적은 서산대사화상당명(西山大師畵像堂銘) 등 총 2점이 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특명을 받아 팔도도총섭이 되어 73세의 노령으로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군 1,500명을 모아 활약했던 서산대사의 영정이 1794년 해남 대흥사에 모셔지자 정조는 친히 지은 '서산대사화상당명(西山大師畵像堂銘)'과 그 서문을 써서 대흥사에 내려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꽃, 구름무늬 채화가 그려진 담황색 비단에 내용이 적혀있고, 끝부분에 정조의 친필임을 상징하는 '홍재(弘齋)'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글의 내용은 서산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 바위 면에 고부조(高浮彫)되어있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공양천인상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좌상으로 규모가 크고, 조각 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그 예가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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