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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방문코스1왕가의 길

남한산성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산 23

방문지 상세 정보

스탬프 위치남한산성 행궁방문자센터,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도장만)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겨졌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렬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때 인조가 피신한 곳이 남한산성이었다. 순식간에 한양으로 진격해 온 청의 군대는 한강을 건너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당시 성안에 있던 식량은 두 달 분량도 되지 않았다. 고립무원 상태로 버티던 조선은 강화도까지 함락되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남한산성을 스스로 걸어나온 인조는 청의 군대가 머물고 있던 삼전도에서 항복하고 굴욕적인 협정을 맺었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울 것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서울 삼전도비다. 패배의 역사가 남아 있긴 하지만 남한산성 자체는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천혜의 요새다.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을 지킨 이곳은 673년(신라 문무왕 13년)에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년)에 다시 고쳐쌓은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축이 진행됐는데, 특히 한국, 중국, 일본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와 서양 무기의 도입은 남한산성 축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정교하게 지어진 성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동·서·남문루와 방어시설, 군사훈련시설, 관청 등이 남아 있다.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남한산성 행궁 사적이 있다. 정무시설뿐만 아니라 종묘사직의 위패를 봉안한 건물까지 있는 이곳은 남한산성이 유사시에 임시 수도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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