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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방문코스1왕가의 길

수원 화성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20-2

방문지 상세 정보

스탬프 위치수원화성박물관 안내데스크 (매주 화~일, 09:00 – 17:00, 17시 이후 스탬프를 찍을 수 없습니다.)

조선 제22대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최고의 명당이었던 수원 화산(현재 경기도 화성)으로 옮겼다. 화산 주변에 살고 있던 백성들에게 새로운 터전을 제공하고 당쟁 근절 및 왕도정치 실현을 위해 1796년(정조 20년) 팔달산 아래 신도시를 건설했는데, 그곳이 바로 수원 화성이었다. 정조의 개혁정신을 바탕으로 실학자 정약용의 설계와 문신 채제공의 감독으로 축성된 수원 화성은 거주지 기능과 방어 기능, 상업 기능이 합쳐진 성곽도시였다. 동서양의 과학기술과 건축술이 총동원된 이 계획도시는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독창적이고 독보적이다. 주변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진 성곽에는 공심돈, 포루, 노대, 봉돈, 암문 등의 시설이 방어와 공격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다. 벽돌로 만든 요새임에도 우아하고 세련된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전면에 반원 모양의 옹성을 축조한 수원 팔달문,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주고 방어적 기능까지 갖춘 화홍문, 군사지휘소 겸 휴식공간인 수원 방화수류정 등과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 덕분이다. 특히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진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은 수원 화성에서 가장 빼어난 건물로 꼽힌다. 성 안에는 수원 화성행궁 사적이 자리하고 있다. 행궁은 왕이 궁궐 밖을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무는 궁궐을 말하는데, 화성행궁은 전국의 행궁 중에서도 규모와 격식, 활용도 면에서 으뜸이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에 행차할 때 머물기 위한 처소였지만 평소에는 관청으로 사용됐다.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에서는 1795년(정조 19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거행되기도 했다. 수원 화성은 성곽뿐 아니라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성곽도시이자 계획 신도시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교통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화성에는 경제적으로 부강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정조의 뜻과 실학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수원 팔달문: 수원 화성의 남쪽 문으로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는데 이 옹성은 1975년 복원공사 때 고증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지금은 성문만 남아 있다. 수원 방화수류정: 1794년(정조 18년)에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 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1848년(헌종 14년)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수원 화성행궁: 1789년(정조13) 수원읍을 화성시 안녕면 일대에서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잠시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되었다. 화성행궁은 1909년부터 수원 주민들을 위한 병원으로 쓰이면서 건물이 철거되어 낙남헌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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