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전등사방문지 상세 정보
강화도에는 단군과 관련된 장소가 있다. 하나는 마니산이고 다른 하나는 강화 삼랑성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은 고려의 수도 개경과 조선의 수도 한양의 외곽 방어 기능을 담당했다. 삼랑성 안에 위치한 전등사는 강화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381년(소수림왕 1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이름은 진종사였으나 고려 때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의 전등사로 바뀌었다. 이후 몇 차례의 화재를 겪으며 건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1625년(인조 3년)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조선은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폈지만 전등사는 왕실의 비호를 받았다. 정족산성 안에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있었는데, 전등사가 실록을 보호하는 수호사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인 1871년(고종 8년)에는 이곳에 무기와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를 지었고, 이듬해에는 50명 승군(僧軍)을 두기도 했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전등사에는 귀중한 국가유산이 많다. 유려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이 고풍스러운 대웅전, 중국에서 건너온 철종, 조각 수법이 뛰어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이 대표적이다. 전등사 서쪽에는 실록을 보관하던 강화 정족산사고지가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있다. 강화 삼랑성: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다. 삼랑성은 1660년(현종 1년)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성 안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없어지고 전등사만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하는 편년체 방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정족산사고본을 기준으로 볼 때 완질 분량이 1,187책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다. 강화 전등사 대웅전: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1621년(광해군 13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을 사람 모습으로 조각해놓았는데 이것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강화 전등사 철종: 일제 강점기 말기 금속류의 강제 수탈 과정에서 중국에서 건너왔으며, 광복 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하여 전등사로 옮겨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 형태와 조각 수법에서 중국종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춘 종으로 한국의 종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7세기 전반에 전북, 충남 등지에서 활동하던 수연이 수화승으로 참여하여 1623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삼세불의 도상을 보이고 있다. 강화 정족산사고지: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내에는 수호사찰인 전등사가 사고를 보호해왔기 때문에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실록과 서적들이 옮겨질 때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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