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 경복궁방문지 상세 정보
1392년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395년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이자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을 완성했다. 도성 북쪽 북악산 기슭에 있는 경복궁은 풍수지리상 명당에 해당하는데, 고대부터 전해오던 도성 건물 배치 형식을 따라 궁의 왼쪽에는 종묘가, 오른쪽에는 사직단이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원래 사정문(四正門)으로 불렸으나 1425년(세종 7년) 광화문으로 바꾸었다. 왕실의 권위가 느껴지는 당당한 궐문 안쪽에는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왕이 업무를 보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로는 경복궁 근정전이 있다. 궁궐 안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근정전은 중대한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왕실의 상징이자 경복궁의 중심이다. 궁궐 뒷부분에는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과 휴식공간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에 있는 연못에는 경복궁 경회루가 있다. 연회 장소로 사용된 경회루는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운치있는 모습으로 인해 궁궐 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 꼽힌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렸던 경복궁은 고종 때인 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다시 세워졌다. 중건된 경복궁은 처음 지어졌을 때보다도 규모가 훨씬 컸다. 그러나 정전과 누각 등 주요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복원 사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비록 많은 건물이 없어지긴 했으나 처음 지어진 자리에 있는 법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 근정전: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조선 전기의 여러 왕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했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연못을 넓히며 크게 다시 지었고.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유지되어 오다가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 광화문에서는 조선시대 왕실 호위문화를 상징하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루 두 번 실시하고 있다. 2002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조선시대 왕실 호위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통문화행사다. ‘조선왕조실록’ 예종(睿宗) 1년(1469) 수문장제도의 시행 기록을 역사적 근거로 하여 재구성된 이 행사는 당시의 복식 및 무기 등을 복원하여 조선 전기(前期) 군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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